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사건 (문단 편집) === 정치적 상황 === [[이명박]]은 자신을 그나마 옹호라도 해 줄 [[친이]] 세력이 지리멸렬해졌다.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이라고 칭하면서도 이명박 구원에 소극적이었다. 이를 두고 [[정두언]] 전 의원은 [[친이]]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초부터 내부적으로 '지리멸렬'했다고 밝혔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특별시장]]을 하기 전부터 극도로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악명이 자자해[* 정두언 전 의원도 이명박의 서울시장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았을 때도 주변에서 이를 근거로 만류했다.] 주변 관계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여지없이 드러난 셈. 이게 어느 정도냐면 이명박이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6급 비서관을 지낸 [[http://www.segye.com/newsView/20180328008258|김유찬 씨가 꺼낸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친이계라고 해도 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뭉친 집단이 되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박근혜 전 의원의 눈치를 보거나 뒤에서 접촉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두언 전 의원이 임기 시작 후 대통령 시계를 친이계 의원에게 선물했을 때 필요 없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계파의 수장한테 충성도가 낮은 인물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같은 당 같은 계파의 대통령의 시계 같은 선물을 직접적으로 거부할 정도면 얼마나 이탈이 심각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친이계 중진이나 최측근이 없었다는 말로까지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친형인 이상득을 제외하고서라도 최측근이거나 소위 영포라인인 이재오, [[이병석(정치인)|이병석]], [[정의화]], [[최병국(1942)|최병국]], [[장제원]]이나 MB키즈라 불리며 이명박의 총애를 받았던 [[박형준]], [[이동관]], [[임태희]], [[주호영]], 김영우를 생각하면.][*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들이었던 [[친문]] 계열 사람들을 확인해보자. 일부는 그를 등졌으나 그를 등지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시간이 되면 기일에 [[봉하마을]]을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참배할 정도다.] 거기에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이 온 참에 홍준표 전 대표가 쫓겨나다시피 내놓은 새누리당의 당권을 박근혜와 친박이 잡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에서는 친박계가 친이계 중진[* 이재오, 정의화, 이병석, 주호영 등.]들을 제외한 친이계 상당수를 공천학살했고[* 여담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18대 총선]]에서의 친이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에서의 친박이 상호 간에 공천학살을 했던 모양새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18대 총선에서는 친이계가 김기춘, 서청원, 홍사덕 같은 친박 중진들만 골라서 쳐냈고, 19대 때 친이계가 잘려 나갔을 때는 친이계 중진들은 상당수 살아남고 초/재선들이 대거 잘려나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19대 총선에서 어찌됐든 친박으로 당권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이었기 때문에 친박이 자행한 공천 학살 강도는 이전의 친이계보다는 약했던 셈이다.] 심지어 이명박이 퇴임한 직후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에서는 칼을 쥔 친박계가 친이계를 포함한 [[비박]]계를 싸그리 공천학살했고[* 19대 공천에서는 친이계 중에서 중진들만큼은 거의 다 지켜냈으나 20대 국회에서는 그 중진들마저도 박근혜랑 사이가 나빴던 데다 박근혜가 가장 싫어하는 게 친이계였는데 당시는 이명박이 퇴임해 정치적인 힘을 잃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거의 짤려나갔다. 거기다가 친박이었다가 박근혜와 척을 진 [[유승민]]도 짤려나갔고 [[친유]] 의원들도 친이계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짤려 나갔다. 그나마 20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 당시 비박계 중에서 세를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남은 게 김무성과 [[친무]]계 정도.]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타 계파가 아닌 친이계로 분류되는 측근이라고 해 봤자 [[주호영]]과 [[김영우(정치인)|김영우]], [[장제원]] 정도고 나머지 친이계 - 범친이계는 측근이 아니거나 죄다 [[홍준표]], [[김무성]], [[유승민]] 등을 수장으로 한 [[친홍]], [[친무]], [[친유]]로 들어갔다.[* 측근이 더 있다면 [[권성동]]과 [[정병국]] 정도인데 그마저도 권성동은 [[제19대 국회]]에서부터 김무성의 친무 라인에 가까워졌고 정병국은 유승민과 행동을 많이 함께 하면서 친유 라인에 합류했다. 나머지 [[제20대 국회]]에서 이명박의 측근이었던 인물들은 대부분 홍준표 - 김무성의 계파로 들어갔으며 이명박의 측근인 장제원도 홍준표 라인에 가까워졌다.] 또 자유한국당은 [[친박]]의 세가 친무 - 친홍에 밀려 약해진 후에도 2020년까지 존재했는데 문제는 친박계 상당수는 이명박을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했던 집단이란 것이다. 자유한국당 세력의 주류가 된 김무성과 홍준표는 친박과는 달리 이명박과 상당한 친분이 있고 김무성과 그의 계파인 친무계가 자유한국당으로 전부 입당하면서 홍준표의 친홍계가 친무계와 힘을 합해 당권을 가지고 있었던 친박으로부터 당권을 빼앗아 오긴 했으나 이명박의 집사인 김백준이 구속되고 국정원 사건이 커지면서 이명박의 신분이 피의자로 전환되자 친이계의 본진이었던 [[늘푸른한국당]] 대표이자 친이계의 2인자였던 이재오까지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할 정도로 친이계와 이명박은 빼도 박도 못하게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래서 그런지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의원 및 친홍 - 친무계 정치인들조차 전체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고 [[문재인 정부]] 비난에 집중했다. [[바른미래당]]은 당시 원내 의석이 30석밖에 안 되어서 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울 정도였고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친이계 정치인들은 정병국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바른정당 탈당사태|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 때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기 때문에[*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명박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꼽으면서 친이계 내에서 친이계의 본거지면서 원외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이나 역시 규모가 작아서 적극적으로 실드를 치기 어려움이 있는 바른정당보다 규모가 큰 자유한국당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이명박에 대한 방어막을 치고 역공을 가하려던 친이계의 의중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 때와는 달리 딱히 이명박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이 별로 없다.[* 있어 봤자 최측근인 정병국을 제외하면 [[정운천]]이나 범친이계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출신 정치인 정도이다.] 거기다가 이명박과 친이계가 작정하고 키워서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합친 다음 자유한국당까지 흡수하려고 창당했던 늘푸른한국당은 사실상 수장인 이명박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해산되고 지도부들이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했다. 어찌 보면 [[김영삼]]이 무리하게 [[3당 합당]]을 밀어붙인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정파, 정당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 세력인데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상도동계로 대표되는 김영삼의 독재 반대 운동권 정치세력과 소위 박정희,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의 민정·공화계라고 불리는 군사독재정권 세력이 각자의 목적달성을 위해[* 김영삼-대권, 김종필-내각제 개헌, 민정계-여소야대 구도 타파.] 손을 잡고 만든 정당이었기 때문에[* 거칠게 말하자면 김영삼이 영남을 온전히 먹고 편하게 대통령 되고 싶어서 군사독재정권 세력과 손잡고 만든 정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 정도로 김영삼은 대권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에게 실망하고 이탈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다.] 구성원 간의 정치 성향이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강삼재]], [[고진화]], [[김부겸]], [[김영춘]], [[김원웅]], [[손학규]], [[이우재]], [[이부영]], [[박재호]] 등이 있다. 물론 이들은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급격히 보수화되어 버린 한나라당에 실망하여 [[열린우리당]]으로 이탈하거나 정계를 은퇴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대권을 틀어쥔 김영삼이 민정·공화계와의 정쟁에서 이겨 민정·공화계를 항복시키고 거기에 재야세력까지 영입해 민주자유당을 확실히 장악한 후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성향, 이념이 다른 정당/정치인이 억지로 뭉친 정당이라 상도동계와 신민주계 그리고 YS키즈를 대변하는 [[친이]]와 민정·공화계를 대변하는 [[친박]]의 성향이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들 계파끼리 동질 의식 따위 없이 전쟁하는 것처럼 싸워 왔다. 더군다나 자연스러운 주류 계파의 이동이 아니라 서로 학살에 학살을 거듭하여 커 왔기에 같은 당이라고는 하지만 계파 간에는 서로를 원수처럼 보았다. 그래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도 당시 친박이 주류였던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친이계나 몇몇 비박계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친박-친이 계파 수장들이 정계 은퇴를 하거나 대거 낙선하여 정계를 떠나는 바람에 계파 갈등은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잊을 만하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나 [[윤석열]] 영입 과정에서 당의 일부 인사들이 윤석열에게 반감을 느끼는 등의 모습을 통해 다시금 망령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긴 한다. 심지어 더 가관인 것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도 파면당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그것도 5년 후에야 구속수사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꽤 큰 데다 전직 대통령 신분의 특성상 어차피 도주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불구속 수사 쪽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이명박 수사에 관한 여론까지 이명박 강력 수사에 고무적이었음을 확인하고 구속수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http://v.media.daum.net/v/20180321040302865|#]][* 70%가 넘는 여론이[[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826|#]] 이명박의 구속에 찬성 입장을 보였고 윤석열도 구속영장 청구를 제안했다. 만약에 불구속으로 결론을 냈다면 문무일 전 총장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옷 벗어야 할 상황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도 불구속 수사 쪽으로 제안했으나 결국 문 총장과 윤 검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